북한의 괴벨스 김기남 사망, 괴벨스와 북한의 선전전략 비교

북한의 괴벨스라고 알려진 김기남 전 선전선동비서가 2024년 5월 7일 94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노환이라고 하네요. 다장기 기능부전으로 2022년부터 치료를 받아왔었고 병상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보도됐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기남의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하고,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김기남은 북한이 세습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김기남은 어떤 사람이고 왜 괴벨스와 비교되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사망한 김기남의 빈소를 조문하는 김정은
사진출처=조선중앙TV



김기남 주요 이력


1929년생인 김기남은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났어요. 북조선 외무성 부상을 지낸 김영남의 친동생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였던 어린시절은 만주국에서 자랐으며 광복 후 북한으로 이주했습니다. 이후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소련(소비에트연방) 모스크바 국제대학에 유학하는 등 소위 북한의 엘리트 코스를 거치게 됩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김일성이 항일 무장투쟁을 할 때 전사한 동료들의 자녀를 위해 설립한 학교입니다. 순직한 고위 간부나 군인들의 유공자 자녀들을 맡아 키우는 특수학교로 이 학원 출신은 상당한 군사적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김기남의 부친이 항일 투쟁과 관련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죠.


1960년대부터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의 책임주필을 지냈으며 1990년대에는 선전선동부장과 선전 담당 비서로 활동했습니다. 북한의 선전선동비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에 속하는 선전 선동 기관입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은 모든 당사업을 조직지도하는 실질적인 집행기관입니다. 당의 주요 이념과 인사, 재정, 조직, 외교, 대남관계 등을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당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역할을 하며,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선전선동비서가 북한에서 어느정도 중요한 위치인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선전선동비서의 주요 역할


당 사상 생활 지도: 조선로동당의 영도적 역할은 당 생활 지도와 당 정책 지도로 구분되며, 당 생활 지도는 다시 조직 생활 지도와 사상 생활 지도로 나뉩니다. 선전선동비서는 이 중 당 사상 생활 지도를 담당합니다. 이는 당원들의 사상과 태도를 교육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포함합니다.


선전 및 선동 활동: 선전선동비서는 당의 정책과 이념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대중에게 당의 목표와 정책을 전달하고, 당의 지도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정보 수집 및 분석: 선전선동비서는 당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 정보는 당의 정책 결정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김기남 전 선전선동비서의 주요 성과


김기남 전 선전선동비서는 북한의 ‘세습 독재체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쳐 북한 노동당의 선전선동 업무를 주도했는데요. 북한 역사에서 김일성의 위치를 건국의 아버지로서 확고히 정립하고, 김정일의 권력 승계를 주도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김정일 사망 후 처음으로 나온 조선중앙통신 보도에는 “김정은 동지의 현명한 령도 아래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의 혁명적 전진을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김정은의 지도력을 강조하고, 그의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김기남은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김정은과 함께 운구차 옆을 지켰던 ‘운구차 7인방’ 중 한 명이었는데요. 그 중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된 후에도 김기남은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김기남은 북한의 ‘괴벨스’로 불려왔습니다. 이는 그가 북한의 선전선동 업무를 주도하면서 북한의 정치 체제를 미화하고, 한반도 전역은 물론 그 너머에도 어필하려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괴벨스와 북한의 세습 선전전략 비교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으로, 그의 선전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순하게 가공하고 끝없이 반복: 복잡한 이념을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언론보도가 애매모호해서는 안 됩니다. 목표가 뚜렷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메시지는 쉽고 명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감성과 본능을 자극: 선전에서는 이성보다 감성과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여러 선거와 전쟁 때 괴벨스가 활용한 도구는 확성기 연설, 신문, 포스터, 유니폼, 음반, 라디오, 영화 등이었고 주로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불안·공포·증오를 이용: 대중을 조정하는 것은 감성 가운데에서도 불안·공포·증오라는 것이 괴벨스의 해석입니다.


영웅 출현: 악마가 등장하면 영웅 출현도 필연적입니다.


북한의 세습 선전전략은 다음과 같습니다.


3대 세습 우상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 우상화를 진행했습니다.


선전선동 업무 주도: 김기남 전 노동당 선전선동 담당 비서는 3대 세습 우상화를 진행하면서 선전선동에 앞장섰습니다.


국민과의 연합형성 차단: 세습에 대한 반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파워엘리트 내부 및 인민대중과의 연합형성을 차단하는 전략도 사용했습니다.


괴벨스의 선전전략과 북한의 세습 선전전략 모두 감성을 자극하고, 단순하게 가공하고 끝없이 반복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괴벨스의 전략은 불안·공포·증오를 이용하는 반면, 북한의 세습 선전전략은 우상화와 국민과의 연합형성 차단을 중점으로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각자의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김기남 연도별 주요 이력

연도사건
1935년일제강점기 위만주국 시대 료녕성 관전현경내에서 출생
1945년일제가 패망하고 중국동북지구가 광복을 맞이한 후 가족과 함께 흑룡궁으로 이주
1950년대송강성립제일초급조선중학교를 필업하고 본교의 사범부를 졸업, 그 후 연변대학에서 학습
1955년경조선정부의 복구건설 수요로 가족과 함께 조선으로 이주
*조선으로 이주 후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종합대학 졸업하고 소비에트연방 모스크바 국제대학 유학
1960년경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원으로 사업
1961년 8월로동당 과학교육부 부부장직을 담당
1976년 4월로동신문의 책임주필이 됨
1977년 11월제6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겸 상설회의 위원으로 선거됨
1977년 12월기자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됨
1980년 10월조선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 중앙위원으로 선출됨
1985년 10월로동당 선전선동부 부장에 임명됨
1990년 4월제9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의원으로 선출됨(자강도 강서지구)
1992년 12월로동당 중앙비서국 선전담당 비서를 맡아 홍보를 담당
2001년 9월사상교육 담당 비서가 됨
2009년 8월 18일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 사망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문단의 일원으로 방남
2010년 9월 28일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 및 중앙위원회 총회에서 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과 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비서로 선출됨
2011년 12월김정일 위원장 사망당시에 국가 장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됨
2016년 6월 29일~2018년 4월 11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직(서렬 5위)을 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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